소통 하는 방법
고등학교 때 공부하다가 지겨우면 TV 앞에 벌러덩 누워서 TV를 봤습니다. 자세는 벌러덩 누워 있지만, 마음 속으로는 얼마나 조마조마한지 모릅니다. ‘이런 모습을 엄마가 보면 뭐라고 할까?’, ‘공부해야 하는데.. 왜 이렇게 TV는 재미있지?’, ‘아이씨.. 숙제해야 하는데..’ 등등의 생각이 머리를 꽉채우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쩌겠습니까? 공부는 하기 싫고, 잠깐 쉬고 싶은 걸요. 한 10-20분 TV를 보다가 속으로 다짐합니다. ‘딱 10분만 더 보고 들어가자.’ 그러고는 시계를 거의 1-2분에 한번 씩 보고 있습니다. ‘아이씨.. 3분 남았다.’
그 순간 엄마가 나타나십니다. ‘허거덕’ 엄마의 눈빛이 정말 한심하기 그지 없다는 눈빛입니다. 그리고는 한마디 하십니다. ‘너 공부 안하니?, 그렇게 TV 보고 있어도되?’ 그 말이 떨어지는 순간 저는 속에서 열불이 납니다. 막 미칠지경이죠. 그리고 공부고 뭐고 하기 싫어집니다.
모두들 경험해 보셨을 것입니다. TV 앞에 누워있는 아들 역할을 해보셨을 수도 있고, 그 아들을 열불나게 만드는 엄마 아빠의 역할을 해보셨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사람의 마음은 다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그 순간.. 엄마가 저에게 ‘공부하다가 힘들어서 잠시 TV 보는구나? 지금 보는 프로그램 다 보고.. 간식 먹고 들어가서 공부 하던거 마무리 해야지.’ 라고 했더라면.. (1) 열불이 나진 않았을 것이고 (2) 자기 마음을 알아준 엄마에 대한 고마움과 (3) 왠지 모를 미안함이 들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아들의 반응은.. (1) 괜찮아.. 다 쉬었어.. 간식 줘.. 들어가서 먹으면서 공부할께.. 혹은 (2) 엄마 고마워.. 그럼 딱 이것만 보고 열심히 공부할께.. 일 확률이 90% 이상일 것입니다.
이건.. 부모 자식 간의 관계에서 뿐만 아니라, 정부와 국민간의 관계, 직장 상사와 직원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1)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 앞서서, 상대방의 처지와 심정을 이해해주고, 공감해주고
(2) 원래 자신이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전달한다면
상대방은
(1) 열불이 안날 것이고
(2) 고마움을 느낄 것이고
(3) 행동에 옮길 것입니다.
이게 모든 소통의 기본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정부의 소통 방법을 보면 참 안쓰럽다는 생각이 많이 듭니다.
MB와 Obama의 차이
연일 외신은 한국의 위기에 대한 글을 쓰고 있습니다. 외신 뿐만 아니라 해외의 석학들도 한국 경제를 걱정하는 우려를 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 행정부 수장과 경제 수장들은 한국의 경제에 큰 문제가 없다고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어제 FT(Financial Times)를 보면 FT가 공식적으로 Obama를 지지하는 칼럼을 썼습니다. ( In our view, it is enough to be confident that Mr Obama is the right choice. 우리의 시각에서, 오바마가 더 좋은 선택이라는 점에 충분히 확신하고 있다. by FT) 그러면서 그 이유를 조목 조목 나열 하였는데요. 제가 재미있게 본 부분은 다음과 같습니다.
In responding to the economic emergency, Mr Obama has again impressed –
not by advancing solutions of his own, but in displaying a calm and
methodical disposition, and in seeking the best advice. Mr McCain’s
hasty half-baked interventions were unnerving when they were not beside
the point.경제 위기와 관련하여 오바마는 다시한번 좋은 인상을 주었다. 그 자신의 진일보한 어떤 대책을 내서가 아니라, 차분하고, 조직적으로 잘 짜여진 입장을 취했다는 점에서 그리고 다른 사람의 최고의 조언을 들으려고 찾아 다녔다는 점에서 인상적이었다. 메케인의 성급하고 설익은 개입은 만약 그 개입이 핵심에서 비껴난 경우 라면 현 정권의 경제정책에 힘을 빼는 일을 했을 것이다.
FT는 오바마가 훌륭한 대책을 세웠기 때문이 아니라, 차분하고 체계적으로 대응을 하고 주변의 훌륭한 조언을 듣으려고 노력은 한다는 점에서 후한 점수를 주었습니다.
사실 우리가 처한 경제 현실에서도 우리 정부와 MB에게 바라는 바는 다르지 않을 것 같습니다. 물론 오바마는 아직 대통령 후보이고, MB는 대통령이기 때문에 그 역할이 다름은 분명하고 MB는 분명 결단을 내려야 하는 입장임은 충분히 이해 합니다. 하지만, 그 자세와 태도는 둘에게 요구 하는 잣대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여러 외신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우리의 경제 위기에 상당 부분이 정책 결정자의 성급함과 자질 부족을 들고 있습니다. 사실 97년 IMF 때도 실제 경제의 문제보다도 정책 결정자들의 실책과 그로인한 불신이 큰 문제를 불러일으켰던 것이 사실 입니다. 그런 시각에서 봤을 때, 우리의 처지는 97년과 별반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이 현실 인 것 같습니다.
한달 전 포스트에서도 비슷한 아쉬움을 이야기 했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달라진 것은 ‘상황이 더욱 좋아지지 않았다.’ 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정부와 MB에게 간곡히 요구 하는 것은 어떠한 정책을 내 놓는 것이 아닐 지도 모릅니다. 물론 결과적으로 훌륭한 정책으로 이야기를 하겠지만, 그 이전에 FT가 오바마를 지지하는 이유 중의 하나였던, 차분하고 체계적인 대응, 그리고 훌륭한 조언을 들을 수 있는 자세, 이 두 가지가 더 근본적이고 궁극적으로 원하는 내용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런 바램은 우리 뿐만 아니라, 많은 외국 투자자들도 그런 것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는 점에서 안타깝습니다.
내가 줄 수 있는 것
칼릴 지브란의 ‘예언자’라는 책에 이른 글이 있습니다.
You may give them your love but not your thoughts.
For they have their own thoughts.그대가 아이들에게 사랑을 줄 수 있으나, 그대의 생각을 줄 수는 없습니다.
왜나하면 그들은 그들의 생각이 있기 때문입니다.You may house their bodies but not their souls,
For their souls dwell in the house of tomorrow, which you cannot visit, not even in your dreams.아이들에게 몸이 쉴 수 있는 집을 줄 수는 있느나, 영혼의 집을 줄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아이들의 영혼은 당신이 가본 적도 없고 꿈속에서도 갈 수 없는 내일의 집에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You may strive to be like them, but seek not to make them like you.
For life goes not backward nor tarries with yesterday.아이들처럼 되려고 노력을 할 수는 있으나, 아이들을 당신처럼 되게 할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인생은 뒤로가지 않으며, 어제에 계속 머무를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Kahlil Gibran from ‘Children from The Prophet’
그런데 우리는 나 아닌 다른 사람에게 사랑이 아닌 나의 생각을 주려고 하고, 몸이 쉴 수 있는 집이 아닌 영혼을 가두는 관습을 주려고 하며, 상대방에서 배우려 하기 보다는 상대방을 자신처럼 만드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아이를 키울 때 뿐만 아니라 나아닌 사람과의 모든 관계에서 특히 나보다 경험이 적다고 생각하는 사람과의 관계에서 늘 범하는 우인 듯 합니다.
논쟁과 싸움
논쟁과 싸움은 어떠한 차이가 있을까요?
건전한 논쟁을 하라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싸움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한참 싸움을 하다보면 왜 우리는 건전한 논쟁을 하지 않을까 의문이 들때도 있습니다. 물론 건전한 논쟁을 위해서는 당사자들의 논쟁에 임하는 자세가 중요합니다. 하지만 꼭 자세의 문제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논쟁에도 건전한 논쟁이 될 수 있는 조건이 있는 것 같습니다.
사실의 가지고 이야기 해서는 논쟁이 될 수 없다.
너무 당연한 이야기 일 수도 있지만, 있는 사실을 가지고 이야기를 해봐야 싸움밖에 안됩니다. 요즘 이기있는 ‘이산’이라는 드라마에 등장하는 영조의 아들 사도세자가 첫째 아들인지 둘째 아들인지에 대한 이야기는 아무리 설득력 있게 이야기를 하고 어떤 논리를 가져다 붙여도 결국 싸움이 되고 맙니다. 사도세자가 태어나기 전에 일찍 죽은 아들이 있었고, 그 다음에 사도세자가 태어났기 때문에 노론이 어떻고 소론이 어떻고 세자 책봉이 어떻고 일찍 죽은 것이 어떻고 이야기 해봐야 결국 싸움입니다. 답은 있고 한쪽은 자신의 잘못된 답을 정답이라 주장하기 위해서 말도 안되는 이야기를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경우가 별로 없을 것 같다구요? 사실 주변에서 논쟁이라고 이야기 하는 것들 중에서는 이런 경우가 꽤 많습니다. 최근 대선의 뜨거운 이슈인 BBK 문제만 봐도 그렇습니다. 누가 거짓을 이야기 하고있는지 여부를 떠나서 이건 사실이 있습니다. 만약 이명박 후보가 연루 되어 있다고 한다면, 이명박 후보가 대통령이 되고 아니 대통령 할아버지가 되도 사실은 사실이 되는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아무리 범여권에서 온갖 조작을 하고 비방을 해도 아닌건 아닌 것입니다. 이런 사실에 대해서 아무리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사람들이 이야기를 한다고 해서 이러한 주제는 건전한 논쟁이 될 수 없습니다.
논쟁도 급이 맞아야 한다.
예를 들어 설명을 해 보겠습니다. 대북 정책을 두고 한쪽 진영에서 대북 지원 방안을 내 놓았습니다. 돈은 어떻게 모을 것이고 지원 하는 방법은 어떻게 하겠다고 이야기 했습니다. 그랬더니 반대 쪽에서는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돈을 모으는 방법이 잘못되었다. 현실성이 없다. 그러니까 대북 지원을 해서는 안된다.
여기에는 어떤 오류가 있을까요? 한쪽에서는 대북 지원을 하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를 했는데 한쪽에서는 그 방법의 일부분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대북 지원 자체가 필요 없다고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이럴 경우는 끝도 없는 싸움의 길로 들어서게 됩니다. 서로 논점의 다르기 때문이지요.
이 방법은 우리 정치권에서 정말 많이 써먹는 수법입니다. 알고도 그러는 건지 모르고 그러는 건지 모르지만 A당에서 큰 주제에대한 실천 방안을 가지고 오면 그 방안의 잘못된 일 부분을 물고 늘어져 큰 주제 자체를 흐트려 버립니다. 국민들은 이런 모습을 보면서 답답할 수 밖에 없지요.
위의 사례와 반대의 경우도 있습니다. 대북 지원 정책의 구체적인 안을 A당에서 발의를 하고 B당에서는 대북 지원 자체에는 이견이 없지만 발의한 구체 안 중에서 지원 시기의 조정이 필요하다고 의견을 피력하였습니다. 이에 A당은 대북 지원은 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반복하며 자신의 안으로 밀고 가야 한다고 주장을 합니다.
이 경우는 B당의 경우에는 세부안에 대한 건전한 논쟁을 하고자 하였으나 A당은 논쟁을 피하며 급이 대전제가 맞으면 세부안도 맞다는 억지를 부리고 있는 것입니다. 이 경우에도 결론은 100% 소모적인 싸움 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누구의 책임인가?
어제 제 블로그 글을 통해서 우리나라도 건전한 논쟁이 활발하게 이루어 질 수 있는 정치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이야기 했습니다. 물론 위의 너무 간단한 이치를 우리나라 정치하시는 높은 분들이 모르시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논점을 흐트려 버리는 방법으로 사용 하는 것이겠죠. 사실 당하는 입장에서는 짜증나고 화가 날 것입니다.
하지만 현실이 그런 것을 어떻게 하겠습니까? 조광조가 왕도정치의 큰 뜻을 가지고 있었던들 결국에는 그 꿈을 실현시키지 못하고 사약을 받아 죽었으면, 그 게임은 진 게임입니다. 그렇기에, 그 짜증나는 상황을 슬기롭게 건전한 논쟁으로 유도 하는 것도 훌륭한 정치인의 덕목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보면 우리나라 정치는 싸움을 거는 짜증나는 집단이 있어서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그 싸움을 걸어오는 친구들을 건전한 논쟁으로 끌어오는 능력을 갖춘 정치인이 없기 때문에 이렇게 된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건전하고 큰 뜻을 이루어 가려는 사람일 수록 더욱 치열하게 고민하고 준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직딩 8년차가 본 일 잘하는 법 part 3
‘직딩 8년차가 본 일 잘하는 법 part 1‘ 과 ‘직딩 8년차가 본 일 잘하는 법 part 2‘에 이어서 마지막으로 ‘직딩 8년차가 본 일 잘하는 법 part 3′를 정리해 보겠습니다.
지금까지 일하는데 있어 중요한 요소들 중에 과소 평가 되어 있는 3가지 중, ‘열정’과 ‘시간관리 능력’에 대해서 말씀드렸습니다. 오늘은 제가 생각하기에 과소 평가 되고 있다는 항목 중 마지막인 ‘커뮤니케이션 능력’입니다.
너무 당연해서 논외로 하는 부분
우선 너무 당연한 부분이어서 논외로 하고 시작하고 싶은 부분이 있습니다. 우리가 업무를 하면서 정말 저 사람은 커뮤니케이션이 정말 문제다. 저 사람이랑 말을 나누기가 정말 싫다. 이런 경우들 입니다. 사실 업무를 하면서 저 사람이랑 이야기를 하는건 너무 힘들다 하는 경우는 그 심각성을 주변 사람은 물론이거니와 본인도 정말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다만, 너무 연습이 되어 있지 않고, 수십년간 만들어진 성격 탓으로 정말 본인의 꾸준한 노력과 주변의 배려가 이런 부분은 해결 해 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본인이 심각성을 느끼지 않고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그냥 조직내의 문제아로 남고 말겠지요.
제가 이야기 하고 싶은 부분은 과소 평가 된 부분입니다. 이런 경우는 절대 과소 평가 되지 않았지요. 오히려 과대 평가 되서 실제보다 과장되게 인식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부분은 논외로 하겠습니다.
커뮤니케이션 능력에서 과소 평가 되어있는 부분 첫번째 – 듣기
모두들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이야기 할 때는 ‘말하기’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다들 머리속으로 아시는 부분이겠지만 정말 커뮤니케이션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듣기’입니다. 그렇다고 아무말도 안하고 열심히 듣는 것을 잘하자고 이야기 하고 싶진 않습니다. 그건 열정이 없는 분들도 다들 잘 하는 부분입니다.
1) 선입견 없이 듣기
듣기 중에서 가장 큰 장애물로 작용 하는 부분이 선입견입니다. 여기서 선입견은 두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첫번째는 듣는 사람이 말하는 사람에 대한 선입견이 있다면 정말 큰 문제입니다. 저 친구는 사원 나부랭이가 뭘알겠어, 컨설팅 하는 넘들이 말만 뻔지르르 하지 뭐, 저 친구 공부도 많이 않한 것 같은데 뭐 좋은 의견 나오겠어. 이런 류의 선입견 들입니다. 정말 이런 선입견은 자신을 바보로 만드는 일입니다. 이런 선입견을 가지고 시작한다면, 그 사람의 발전은 없다고 장담 할 수 있습니다.
두번째 선입견은 ‘이 문제의 답은 A다.’ 라고 단정 지은 상태에서의 듣기 입니다. 이런 선입견이 있을 경우에는 내가 생각하는 답과 유사하면 귀가 솔낏하고 그렇지 않으면 말을 중간에 끓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아지지요. 그럴 거 였으면 뭐하러 의견을 물어보았습니까? 듣지 않는 편이 훨씬 나았을 것입니다.
듣기의 기본은 ‘나와 다른 시각의 의견을 한번 듣고 내가 생각하지 못한 부분을 찾아내 보자’라고 생각합니다. 분명 나의 발전과 일의 성공을 위한 것이지요. 그렇다면 그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노력을 해야 할 것입니다. 어떤 선입견이든 이를 저해 하는 요소이고 나의 발전을 방해하는 장애물이라고 생각합니다.
2) 상대방의 의도를 정확히 파악하기 – 적극적으로 듣기
어떤 사람은 말을 청산유수처럼 합니다. 조금만 듣고 있어도 곧 홀릴 것 같습니다. 같은 내용도 그 사람이 이야기하면 정말 맞는 말 같습니다. 정말 타고 난 것이지요. 이런 사람들과의 커뮤니케이션에서 주의해야 할 점은 이 사람들의 의도에 말려 갈 수 있다는 점입니다. 이 사람의 원래 의도를 파악하지 못하고 이 사람들이 가장하고 있는 의도에 말려 들 수 있습니다. 참 난감 합니다. 한마디로 게임이 끝난 것이죠. 이럴 때 일 수록 정신 바짝 차려야 합니다. 이 사람들의 말을 굳이 반박할 필요는 없으나, 이 사람들의 궁극적인 의도를 파악하기 위해서 적극적으로 커뮤니케이션을 해야 합니다.
또, 어떤 경우는 말주변이 정말 없어서 도데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모르는 경우가 있습니다. 무지 지루하고 답답합니다. 하지만 여기서 포기 하면 안됩니다. 듣는 능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경우가 이때 입니다. 이런 분들은 주로 본인의 이야기를 알아 듣는 경우가 없다고 생각하고 계시기 때문에 이분들의 의도를 파악 했음을 느꼈을 때 정말 그 사람에 대한 신뢰는 무척 높아 집니다.
듣기를 시작 하였다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적극적인 듣기가 정말 필요한 것이지요. 많은 분들이 말씀하셨듯이 듣기는 커뮤니케이션의 시작입니다.
Expectation management (기대 관리)
또 한가지 커뮤니케이션에서 정말 중요하지만 과소 평가 되어 있는 부분이 ‘기대 관리’ 입니다. 주로 상하간의 커뮤니케이션과 고객과의 커뮤니케이션에서 필요한 요소 입니다.
상사들이 가장 싫어하는 부류의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아십니까? 한마디로 ‘일 못하는 사람’이라고 쉽게 이야기 하지만, 정확히는 사고 치는 사람입니다. 생각지도 못하는 수준의 형편없는 결과를 갑자기 가지고 오는 사람, 꼭꼭 숨기다가 한건 하는 사람 이런 사람들이 가장 골치 덩어리입니다. 시장 상황이 좋지 않아서 담당하는 일이 잘 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정말 리소스가 부족해서 데드라인에 업무를 다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실적 보고를 하는 날, 업무 데드라인 바로 직전에 와서 터트리면 이거 감당 할 수 없습니다. 이건 완전 미치는 일이지요.
원래 잡았던 목표가 100인데 시장 상황이 정말 좋지 않아서, 정말 최선을 다해서 90을 했습니다. 그래도 상사가 이 친구는 100은 당연히 했을 것이고 120까지도 기대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면 90이라는 성적은 형편 없는 성적입니다. 하지만, 목표는 100으로 잡았으나 진행 하다보니 어려운 점이 생겨서 그 부분을 해결 하려고 노력 하는 모습들을 모두 상사가 알고 있을때, 상사는 80밖에 못할 것이라고 생각 했는데 90을 가지고 왔을때 상사는 이 사람이 너무 이쁠 수 밖에 없습니다.
좋지 않은 성과 보다 더 좋지 않은 건 불확실 성입니다. 정말 이건 시장이 모두가 다 아는 논리 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직장 생활을 하면서 정말 간과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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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심코 시작했던 글이 은근히 스트레스가 되면서 3부작의 정말 긴 글이 되고 말았습니다. 저도 나름대로 글을 쓰면서 스스로를 반성하게 된 계기도 되었던 것 같습니다. 우선은 ‘직딩 8년차가 본 일 잘하는 법’은 아쉬운데로 여기서 마무리 하고 저 스스로도 글에 썼던 것들을 실천 하도록 노력해야 겠습니다.
고객 중심의 제품 개발
요즘 기업 중에서 ‘고객’ 중심의 경영을 하지 않겠다는 회사는 하나도 없을 것이다. 뭐, 우리 회사의 결제란에는 고객이 있다느니.. 고객이 왕이라느니 정말 구호도 다양하다. 그런데 정말 그들은 고객의 소리를 듣고 고객이 그들의 중심에 있는 것일까?
‘우리 회사는 고객 중심으로 회사가 운영되고 있습니다.’ 라고 자신있게 이야기 할 수 있는 회사는 그리 많지 않을 것 같다. 고객 중심 회사 운영은 어려운 문제라고 치고, 고객의 소리를 귀기우리는 회사는 얼마나 될까? 이 또한 많지 않을 것 같다.
아니, 너나 할 것 없이 고객의 이야기를 듣고 고객의 소리에서 회사 경영의 답을 찾아야 한다고 이야기 하면서, 다들 그렇게 소리높여 외치고 다니면서 그렇게 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들은 광고 선전을 하기 위해서 고객을 이야기 했지 진심으로 고객의 이야기를 듣는 것을 원하지 않아서 일까?
일부는 실제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일부는 아닌 것 같다. 정말 고객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는데, 고객의 이야기를 듣는 조직 따로 실제 일하는 조직 따로 이다보니 고객의 소리는 말로만 듣는 것이 되버렸을 가능성이 높다. 사실 고객의 이야기를 듣고 제품과 서비스에 고객이 중심이 되는건 좀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여러분도 쉽게 ‘이 회사는 왜 이래? 이걸 돈내고 쓰라는 말이야? 이래서 고객이 만족 할 수 있다고 생각해?’ 이야기는 할 수 있어도, 내 회사, 내가 하는 일에서 고객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잘 알고 있는지 묻는 다면, ‘아니다’라고 대답 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그러면서, ‘나는 개발 업무를 하고 있어. 난 프로그래밍을 잘 하면 되는거지. 기획자가 이야기 해준 것을 얼마나 잘 만드냐가 나의 일이야.’ 혹은 ‘난 데이터베이스를 늘리는 일이 내 일이야. 데이터베이스를 수집 하기만 하면 좋은 뭔가가 나올꺼야.. 고객이 뭘 원하는지 들어보라고? 그걸 어떻게 해야 되는데?’ 이런 이야기들이 주로 나올 것이다.
또, 이런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고객의 소리를 들어보라고 해서 고객센터 교육 받아봤는데 별거 없더라구. 고객센터에 전화 하는 인간들이 이상한 인간들이지.’ 아니면, ‘고객센터 이야기 뭐.. 내가 모르는 일인가? 다 알고 있었던 문제들이라고. 그건 시간이 없고 지원이 없어서 못한거지 몰랐던 거 아니야. 사실 고객들이 하는 문제점 다 알아.. 누가 모른데’ 그런데 진짜 다 아는 것일까?
이쯤되면 경영진은 직원들이 고객의 이야기를 듣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목이 터져라 이야기 하고 있는데 도데체 직원들이 듣는걸 잘 할 줄 모른다고 생각할 것이다. 아주 답답한 노릇이다.
여기서 문제는 고객 중심 이라는 말을 너무 쉽게 생각 하고 있는 것 같다는 점이다.
고객의 소리를 듣지 않는 조직에는 여러가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첫번째는 조직구조가 제품 중심이다보니 난 프론트엔드 개발, 난 DBA, 난 UI디자인, 난 비주얼디자인, 각자 맞은 일을 하는 것과 고객의 이야기와는 별게의 구조가 되어 있으니 도데체 고객의 이야기는 들을 필요 없는 조직 구조라는 점이다. 게다가 업무 평가도 전혀 상관없으니 들어서 뭐하겠는가?
두번째 누가 고객의 이야기를 듣고 이야기를 해도 서로 잘났기 때문에 너만 야냐.. 나도 안다. 라고 생각하는 협력이 잘 되지 않는 문화를 가지고 있기 때문 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세번째는 고객의 이야기를 듣는 방법을 잘 모른다는 것이다.
경영진이 진심으로 고객 중심의 회사 경영을 하고 싶다면, 우선 조직을 고객 중심으로 바꿔야 할 것이며, 그에 합당한 평가 제도를 정착 시켜야 할 것이다. 무작정 외친다고 될 일은 절대 아니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것은 고객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눈과 귀를 가져야 할 것이다. ‘사람은 아는 만큼 보인다.’ 라는 이야기를 들어봤을 것이다. 아무리 고객의 주옥같은 이야기도 어떤 사람에게는 ‘다 아는 이야기’, ‘무지하게 지루한 이야기’고 어떤 사람에게는 엄청난 인사이트를 가져다 준다. 그 차이는 얼만 고객의 이야기를 들을 줄 아느냐의 차이 일 것이다. 그리고 성공적인 제품과 그렇지 않은 제품을 결정짓는 중요한 포인트가 될 것이다.
John Battelle

존 바텔
이 사람의 이름을 처음들었던 것은 ‘The Search: 변역서 명 구글스토리’라는 책에서 였다. 당신 우리나라에는 구글관련 서적이 두권이 동시에 나왔었는데 ㅋㅋ 두번째로 산 책 ‘구글스토리’의 저자가 존 바텔이었다.
그 다음에 본건 ‘John Battelle’s Searchblog‘ 우연히 블로깅을 하다가 알게 된 블로그 였는데 사실 이 블로그의 운영자가 The Search의 저자 존바텔이라고는 알지 못했다. (블로그 메인 페이지에 책이 떡 하니 올라와 있지만.. 글만 열심히 봤나 보다. )
그리고, Web 2.0 Expo에서 정말 인상적으로 이 사람을 봤다. Google의 CEO 에릭슈미트와 Yahoo!의 제프위너를 Keynote 자리에서 인터뷰를 했었는데… 이 사람의 식견과 말솜씨에 깜짝 놀랐었다.
많이들 알고 있겠지만, Wired와 The Industry Standard의 창간인이자 편집자로 IT 업계에서 굉장히 영향력이 있는 저널리스트다. 사실 저널리즘을 잘 알지 못하지만, 참 우리나라에서 아쉬운 산업 전문 저널리스트이다.
자신이 알고 있는 것도 사람들이랑 이야기 하다보면 논리도 더 발전하고 스스로 알고 있던 것들도 다시 검토 해보는 시간이 된다는 경험을 모두 해 보았을 것이다. 존 바텔은 미국 IT업계에서 이런 일을 도와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단지 사실을 전달하는 것 뿐만 아니라, 업체의 생각에 도전도 하고 같이 고민도 하면서 논리를 키워가고 검증하는데 중요한 도우미가 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맥락에서 개인적인 생각으로 한 산업이 건전하게 발전을 하기 위해서는 정말 훌륭한 저널리스트와 애널리스트가 있어야 한다고 믿고있다. 그들은 산업 밖에서 산업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 역할이 무척 크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업계에 종사하는 사람으로써 우리나라에도 존 바텔 같은 영향력 있는 저널리스트가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하다. 나를 비판 할때는 미워 보이기도 하겠지만, 좋은말 듣기 좋은 말만 하는 받아쓰기와 뭔가 특종을 올리기위해 거짓말을 서슴치 않는 사람들 보다는 건전하게 바판하고 토론 할 수 있는 저널리스트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정확한 판단과 비판 그리고 전달…
우리나라에서도 John Battelle 같은 IT 전문 저널리스트가 나오길 간절히 바라면서..
조급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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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정상까지 가는 경기를 합니다. 길은 여러개의 갈림길이 있고, 가장 가까운 길은 30km면 갈 수 있는 거리를 길을 잘못 찾아 들면 100km 이상 돌아가야 합니다. 시합은 3전 2선승 으로 승부를 결정합니다. 첫번째 시합에서 A는 해외에서 들여온 장비를 모두 갖추고 선두를 유지하며 지름길을 찾아가고 있었습니다. 뒤를 돌아봐도 2등은 보이지 않습니다. 여유가 생긴 A는 가다가 목이마르면 물도 마시고, 담배도 한대 피면서 여유를 부렸습니다. 여유를 부리던 중 또박또박 산을 오르는 B를 마주치게 되었습니다.
뜨끔한 나머지 짐을 챙기고 출발을 하려고 했으나, 장비가 너무 많아 챙기는데만해도 시간이 많이 걸립니다. 그러다 보니 B가 저만치 앞서가게 되었습니다. B를 쫓아가려다 보니 A는 은근히 부아가 치밉니다. 이놈의 장비들이 걸리작 거리고, 발걸음을 느리게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왜 이 따위 장비를 질머지고 가야되지?’ A는 장비들을 버리지도 못하고 어쩌지도 못하던 터에 좋은 생각이 났습니다. 1시간이면 갈 거리인데 예비 밧데리는 가지고 갈 필요가 없다고 생각 했습니다. 그리고 유사시를 대비해서 가지고온 다른 장비도 무개만 가중 시킨다고 생각했습니다. 몸만 가벼우면 뛰어난 체력으로 B를 금방이라도 따라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밧데리와 예비 장비를 산속한곳에 버려두고 허겁지겁 뛰어가기 시작합니다.
가던 중 여러개로 갈라진 갈림길이 나옵니다. 여기서 최선의 지름길을 찾으면 바로 B를 따라잡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장비를 켜고 어느길이 빠른길인지 확인을 해봐야 하나 그럴 시간이 어디 있습니까. 이놈의 장비 때문에 B한테 이렇게 되쳐지게 되고 말았는데요. 그리고 이 놈의 장비는 최선의 길을 찾아주기보다는 너무 많이 돌아가지 않는 안전한 길을 찾아줍니다. A는 지금까지 올라오면서 지름길을 잘 찾아왔는데 주로 이런 쪽으로 가면 빠른길이야 하면서, 가장 오른쪽 길을 택합니다. 그리고 열심히 걸어갑니다. 내심 기분도 좋습니다. 장비의 도움없이도 최선의 지름길을 잘 찾았다고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바보같은 B는 조금 먼 안전한 길로 돌아간 듯 싶습니다.
그런데 가도 가도 끝이 없는 것입니다. 또 아무리 이를 악물고 달려봐야 B는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어떻게 어떻게 허덕이며 반환점에 도착해보니 B는 한참전에 도착했다는 것입니다. 알고보니, 지름길이라고 판단을 하고 뛰어온 길이 한참 돌아간 길이었던 것이었습니다. 많은 반성을 했습니다. 지금과는 달리 여유도 부리지 않고, 담배도 피우지 않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체력 보강을 위해서 영양제도 섭취했습니다. 그리고 굳은 마음 가짐을 했습니다.
옆에서 결의에 찬 A를 보고 심판관이 물어봅니다. ‘잘나가던 그대가 어쩌다가 추월을 당했나?’ ‘지금 부터 B를 이길 수 있는 전략을 가지고 있나?’ 결의에 찬 A는 대답을 했습니다. ‘지금까지는 시속 5km로 등반을 했는데 지금부터는 새롭게 결심을 하고 20%나 속도를 높여 시속 6km의 속도로 전력을 다할 것입니다. 속도만 더 낸다면 반드시 이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더 말 시키지 마세요. 급해요. 지금 당장 뛰어가야 하거든요.’ 그렇게 A는 허겁지겁 달려가기 시작합니다.
우리는 늘 누군가에게 추월을 당하고 격차가 벌어지면 속이타고 마음이 조급해지기 시작합니다. 그럴 때면 변화의 필요성을 느끼고 어떻게 혁신을 해야 할지 고민을 합니다. 그런데 마음이 급합니다. 지금 주저했다가는 경기가 끝날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조급한 마음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이런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내가 못한건 조금 느렸기 때문이야, 지금보다 힘차게 달려가면 이길 수 있을지도 몰라’ 그리고는 지금까지 달려온 방법대로 달려가기 시작합니다. 지금까지 허겁지겁 달려온 것이 실패의 원인인지도 모르고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