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e’s to the crazy on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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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태어난 의미
Aug 21st
▷ 세상에 태어난 의미는 큰일을 하는 데에 있다.
▷ 인간은 자신이 원하는 길로 세상을 개척해 나간다.
▷ 다른 사람의 업적을 흠모하거나 남의 흉내는 내지 마라. 석가도 공자도, 또 중국 왕조에서 창업을 이룩한 역대 제왕도 모두 선례가 없는 독창적인 길을 걸었다.
▷ 인생이란 50년이 고작이다. 일단 뜻을 품었다면 그 뜻을 이룰 수 있는 수단만을 강구하되 허약한 생각을 가져서는 안된다. 비록 그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다 해도 그 목적을 향해 걷다가 죽어야 한다. 생사는 자연현상이니 미리 계산에 넣어서는 안된다.
-사카모토 료마
이렇게 이렇게 하루하루를 살고 있는 저를 되돌아보며 많이 반성하게 됩니다.
블로그에 글쓰기를 뜸하게 했던 시절에 읽은 책중에 ‘료마가 간다’라는 책에 나온 글입니다. ‘료마가 간다’는 메이지유신의 뼈대를 세운 사카모또 료마라는 인물의 일대기를 그린 시바 료타로의 소설입니다.
인정투쟁과 보스
Mar 24th
사람들은 인정받기 위한 투쟁을 벌이는데, 어떤 사람들은 목숨을 걸면서까지 인정받기를 바라고, 어떤 사람들은 인정받기보다는 목숨을 구하기를 바란다. 목숨을 아끼는 자는 굴복해 노예가 되고, 목숨을 거는 자는 진짜로 죽을 수도 있고 살아남아 노예를 부리는 주인이 될 수도 있다.
- 역전의 리더 검은 오바마 p35(박성래 저, 랜덤하우스)
누군나 보스가 되기 위해서는 생각보다 무척 큰 리스크를 감수해야한다. 주먹 세계에서 보스이건 한 나라의 대통령이건.. 다만 십 중 구 이상이 진짜 죽는 다는 사실이다.
큰 뜻을 이루기 위해 목숨을 걸 수 있는 용기도 필요하겠지만, 죽지 않을 수 있는 동물적 직관과 능력이 필요 하다.
학익진
Feb 23rd
무엇이 집중인지를 보여주는 가장 좋은 사례 중 하나가 이순신 장군의 학익진인 것 같습니다.
적군의 배는 똘똘 뭉쳐서 집중한 것 같아 보이지만, 적의 포구는 분산되어 있고, 아군의 학익진 대형의 전함은 흩어져 있어 보이지만, 포구는 한쪽으로 집중 되어 있는…
흔히 많이 이야기 하는 선택과 집중에서 많은 사람들은 집중 할 곳에 많은 리소스를 배치해 달라고 합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리소스를 한곳에 모으는 것이 아니라 포구의 방향이 한곳이어야 하고, 그것이 통제 되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모여 있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바라보는 방향이 같아야 한다는 점입니다.
조준
Feb 18th
나를 이동시키면서 고정된 적을 조준하는 일은 어려웠고 나를 고정시키고 이동하는 적을 조준하기도 어려웠다. 나를 이동시키면서 이동하는 적을 조준하기는 더욱 어려웠으나, 모든 유효한 조준은 이동과 이동 사이에서만 이루어졌다. 내가 적을 조준하는 자리는 적이 나를 조준하는 표적이었다. -칼의 노래 p244
우리는 이동하는 적을 조준하라고 하면 적이 이동을 하는데 어떻게 정확하게 조준을 할 수 있냐고 투털거리곤 한다. 또, 조준 하라고 하고 이동하면 주준 하는데 흔들린다고 얌전하게 갈 수 없나고 손가락 질을 한다.
지휘 계통이 마비되면 통제되지 않는 적의 함대는 초장부터 난전으로 돌입했다. 그때, 적들은 집중도 없었고 분산도 없었다. 계통 없는 적들은 한 척씩 마구 쑤시고 앞으로 나왔다. 적이 계통을 잃었을 때 나는 계통을 집중시켰다. 계통 없는 적을 한척씩 온전히 잡아나갈 때, 싸움은 기나긴 여름날의 농사일처럼 지루하고 힘겨웠다. -칼의 노래 p245
어떤 사람은 집중을 이야기 한다. 또, 어떤 사람은 분산을 해야 한다고 한다. 그러나 중요한건 집중이든 분산이든 계통이 마비되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사실이다.
잘못 번역한 책
Nov 11th
번역은 또 하나의 창작입니다. 뭐 저는 전문 번역가는 아니라.. 번역에 대해서 어쭙지 않게 뭐라고 하는 것이 웃기긴하지만.. 글을 읽는 사람으로써.. 잘못된 변역은 많은 사람이 정말 화가 많이 나는 일입니다. 요 며칠 서점에 갔다가 정말 기대를 많이 하고 산 책이 번역이 영 엉망이어서.. 도저히 읽을 수가 없었습니다. 책 값도 책 값이지만 그 책을 원서로 읽지 않는 이상 읽을 수 없다는 점에서 정말 화가 많이 나는 군요.
정말 훌륭한 원작을 잘못된 번역으로 망쳐 놓으면, 뭐 외국어를 잘 하는 사람이야 원서를 사서 읽으면 되겠지만, 그렇지 못한 많은 사람들은 책 값 아까운 것이 문제가 아니라, 좋은 책을 도저히 읽을 수 없게 만듭니다. 정말 이건 나쁜 일입니다.
사람들의 많이 하는 오해 중의 하나가, 영어를 잘 하면 번역을 잘 할 것이라고 생각들을 합니다. 하지만 생각해 보시면, 미국의 깡패들도 영어는 잘 합니다. 미국에 사는 전교 꼴찌도 말은 할 줄압니다. 영어를 잘 하는 것은 번역의 아주 일 부분일 뿐입니다. 번역을 하는 사람은 원문을 정확히 이해할 수 있어야 하고, 저자가 하고 싶어하는 의도를 충분히 이해 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번역을 하는 사람은 해당 분야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이 있어야 하고, 원저자의 논리를 전달 할 수 있을 정도의 논리력도 있어야 합니다.
또 다른 오해 중의 하나는 해당 분야를 원서로 공부를 많이한 해당 분야 전문가가 번역을 하면 잘 할 수 있다는 오해 입니다. 물론 해당 분야의 전문가라면 원저자의 의도나 의미는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이 되겠지요. 하지만, 본인이 이해 한 것을, 사전 지식이 많지 않은 일반 독자들이 이해 할 수 있도록 글로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해당 분야 전문가들이 번역한 많은 책들이 이건 글인지 암호인지 모르는 표현들을 나열하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번역은 정말 쉬운 일이 아닌 것 같습니다. 그래서 번역한 사람도 책에 저자 옆자리에 올려 주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글을 읽을 줄 알면 쫙 변역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계신다면, 다시한번 생각해 주십시오. 그런 분들 덕분에 엉터리 번역서와 엉터리 번역글이 양산되고 있으며, 자질 없는 번역가들이 판치는 것 같습니다.
(제가 좋은 책을 읽을 수 없게 되서 너무 흥분 한 것 같습니다. ㅡㅡ,)
공명은 왜 유비와 함께 했을까?
Sep 17th
삼국지 시리즈 3탄입니다.
제가 삼국지를 읽으며 가장 재미있는 부분은 모사들의 지략입니다. 그 중 가장 돋보이는 모사는 단연 공명이지요. 그런데 공명은 왜 유비를 따랐을까요? 삼국지에도 나오지만 공명은 처음부터 유비가 패권을 차지하기에는 시운이 늦었다고 판단했습니다. 판세가 죽어다 깨어나도 유비가 뒤집기는 힘들다고 생각을 했다고 나옵니다. 그럼에도 공명은 유비의 사람이 됩니다. 그 이유는 무었일까요?
(1) 삼고초려를 한 유비의 정성이 대단해서?
(2) 아니면, 조조나 손권은 자신을 중하게 쓰지 않을 것 같아서?
(3) 명분이 있고 의로움이 있는 주군을 모시기 위해서?
언뜻 생각하기에는 이 세가지 이유 중의 하나인 것 처럼 보이는데, 그래도 쉽게 납득이 되지 않습니다. ‘삼고초려’는 정말 유비의 멋있는 모습이고, 사람을 중하게 생각한다면 삼고초려도 마다하지 않아야 함은 우리에게 큰 교훈을 주긴 하지만, 이 사람을 도와 봐야 답이 없다는 상황에서 충분히 고사를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또, 조조나 손권도 사람이 그릇이 절대 작지 않아서 공명과 같은 뛰어난 인물은 중용했을 확률이 높습니다. 마지막으로, 역사는 승자의 편이라고 명분과 의로움은 승자의 논리에 의해서 다시 쓰여질 수 있는 것 아닌가요?
그렇다면 왜 공명은 유비의 사람이 되었을까요?
제가 생각하기에는 이렇습니다. (물론 저 개인적인 생각이고 짧은 식견이기에 혹 다른 생각이 있으시면 꼭 말씀주시기 바랍니다.)
첫번째, 천하의 인물은 조조, 손권, 유비라고 판단을 했고, 서로 운이 다를 뿐 그 사람의 크기는 다르지 절대 뒤지지 않는 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두번째, 공명 자신을 가장 필요로 하는 사람은 유비라고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조조와 손권 진영에 들어가서도 충분히 두각을 나타낼 수는 있을 것이라고 판단 했으나, 유비의 사람이 되었을 때 만큼은 되지 않으리라고 판단 했을 것입니다.
사실 저는 이 부분이 가장 크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이 같은 일을 하여도 최선의 성과를 거둘 수 있는 자리에서 일하는 것도 훌륭하지만 그보다 더 훌륭한 자리는 나를 진심으로 필요로하고, 나의 가치를 최대한으로 높일 수 있는 자리 인 것 같습니다. 조금 세상 물정 모르는 이야기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 그런 자리가 일을 하면서도 더 신이 나고 재미있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세번째, 결국 천하를 얻지는 못할 수 있겠지만, 자신이 역할을 한다면, 역사에 남을 수 있을 만큼의 세력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을 것입니다.
상황이 이러하다면, (1) 자신의 가치를 가장 높일 수 있는, (2) 충분히 역사에 남을 만큼 공을 세울 수 있는 방법은 유비와 함께 하는 것이라고 판단 했을 것이고, 그것이 최선이라고 판단 했을 것입니다. 거기에 앞에 이야기한 정성과 명분까지 있으니 유비를 따르지 않을 이유가 없었던 것이죠.
결론적으로 공명은 역사에 길이 남게 되었고, 모두가 칭송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원소와 조조의 차이
Aug 26th
지난번 동탁과 여포 이야기 이후 삼국지 시리즈 2탄입니다. ^^; (사실 요즘 삼국지를 다시 읽고 있습니다.)
삼국지를 읽어보신 분들은 원소라는 사람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훌륭한 집안 배경에, 이런 저런 조건을 다 갖춘 사람입니다. 엄청난 자부심이 있었고, 사람들도 그 후광 덕분인지 수하의 사람들도 꽤 있었고, 대군을 이끌고 있었습니다. 공손찬을 무너트린 인물이 원소이지요.
결국 이 친구는 조조에게 관도, 창전대전에서 패하고 무대 뒤로 사라지게 되는데요. 그 과정을 지켜보면 재미있는 부분이 많이 있습니다.
사실 삼국지 같은 역사 소설을 읽고 있으면 이기는 친구들은 참모들이 훌륭한 계책을 이야기 하고 이를 따를고 결국 이깁니다. 반면, 지는 친구들은 참모들이 좋은 전략을 내도 결국 듣지 않고 지고 말지요. 이런 모습을 보면서 전에 들었던 생각은 주변 사람의 이야기를 잘 듣는 들을 귀를 가진 사람이어야 겠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다시 읽으면서 들었던 생각은 ‘들을 귀’만의 문제는 아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건 듣고 안듣고 만의 문제는 아닌 것 같았습니다. 이기는 친구들도 어떨 때는 주변 사람의 말을 뿌리치고 이기기도 하고, 어떨 때는 주변의 말에 휘둘려 지기도 합니다.
그럼 그 차이는 어디에 있을까요?
제가 오늘 관도 대전을 치루는 조조와 원소를 보면서 본 그 차이는 다음 3가지 였습니다.
1. 사람에 대한 정확한 평가가 있어야 한다.
어떤 사람이 이야기를 하면 귀기울여 꼭 들어야 하는지, 어떤 사람 이야기는 한번 걸러서 들어야 하는지에 대한 판단을 정확하게 하고 있을 필요가 있어보입니다. 너무 당연한 이야기 일지는 모르지만 그 결과는 큰 차이를 내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을 경우 내 생각에 맞는 이야기만 듣게 되고 나랑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이 훌륭한 사람인 것으로 착각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주변 사람의 이야기를 들을 필요가 없을 테지요.
2. 어떤 문제에 대한 스스로의 깊은 고민이 있어야 한다.
결국 자신일에 대한 판단은 본인이 내리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스스로 깊은 고민을 하지 않는 경우가 많이 있어 보입니다. 자칫 잘못 생각하면 마이크로 매니지먼트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을지 모르지만, 마이크로 매니지먼트와 사안에 대한 본인의 깊은 고민은 다른 차원의 문제 인 것 같습니다. 스스로 원리를 파악하고 어떻게 매니지 하느냐는 그 방식이 다양할 수 있습니다. 다만 스스로 문제에 대한 통찰을 가지고 있는 것은 매우 중요해 보입니다.
3. 자만과 겸손은 큰 차이를 낸다.
마지막은 다시 겸손 입니다. 스스로 깊은 고민을 했다고 하더라도 그렇게 내린 결론이 있더라도 내가 믿는 사람이 하는 충언은 겸손한 자세로 다시 되집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내 생각의 점검 차원에서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것이죠. 나와 다른 의견이 아니라 내 생각의 발전을 위한 검토 입니다.
각각의 케이스를 삼국지에서 가지고 와서 적용을 시키면 더 멋진 글이 될 것 같지만, 제 기억력이 그리 좋은 편은 아니어서, 읽으면서 메모를 해두었던 부분만 정리 하는 것이 좀 아쉽습니다. 나중에 시간이 나면 보충해서 그 케이스들을 넣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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