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e’s to the crazy ones
Diary
변명
Jul 6th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책을 가장 많이 읽으셨던 때가 언제이십니까?
저는 아마도 재수 할 때였던 것 같습니다. 수를 세보지는 않았지만, 저의 인생을 통틀어서 가장 바쁘게 살았던 때도 재수 할 때였고 가장 책을 많이 있었던 때도 재수 할 때였던 것 같습니다.
시간이 많으면 책도 많이 읽고, 블로그에 글도 많이 쓰고 할 것 같은 것이 일반적으로 생각입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시간이 많으면 보통은 빈둥 빈둥 가쉽성 뉴스를 클릭하거나 쇼핑 사이트를 열심히 보고 있을 확률이 높은 듯 합니다.
공부도 일도 열심히 살 때 뭔가 바쁘게 움직일 때 시간을 쪼개서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보면 제가 블로그를 소홀히 했던 것도 제가 열심히 살지 않았던 것의 반증이 아닐까 싶습니다.
새롭게 시작하는 2010년
Jan 13th
정말 오랫만에 블로그에 글을 올리는 것 같습니다. 두달은 족히 넘은 것 같은데요. 너무 블로깅에 소홀했던 것 같습니다.
올해는 전년과 다르게 새해를 시작하는 저의 마음이 왠지모르게 좋습니다.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고, 괜히 기분이 좋습니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진자 그런 기분이 드데 ㅎㅎ 정말 기분이 좋습니다.
2010년 뭐든지 할 수 있다는 기분으로 열심히 살아보렵니다.
이글을 보시는 여러분 모두 열심히 사는 한해 되시기 바랍니다.
내가 줄 수 있는 것
Jul 1st
칼릴 지브란의 ‘예언자’라는 책에 이른 글이 있습니다.
You may give them your love but not your thoughts.
For they have their own thoughts.그대가 아이들에게 사랑을 줄 수 있으나, 그대의 생각을 줄 수는 없습니다.
왜나하면 그들은 그들의 생각이 있기 때문입니다.You may house their bodies but not their souls,
For their souls dwell in the house of tomorrow, which you cannot visit, not even in your dreams.아이들에게 몸이 쉴 수 있는 집을 줄 수는 있느나, 영혼의 집을 줄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아이들의 영혼은 당신이 가본 적도 없고 꿈속에서도 갈 수 없는 내일의 집에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You may strive to be like them, but seek not to make them like you.
For life goes not backward nor tarries with yesterday.아이들처럼 되려고 노력을 할 수는 있으나, 아이들을 당신처럼 되게 할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인생은 뒤로가지 않으며, 어제에 계속 머무를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Kahlil Gibran from ‘Children from The Prophet’
그런데 우리는 나 아닌 다른 사람에게 사랑이 아닌 나의 생각을 주려고 하고, 몸이 쉴 수 있는 집이 아닌 영혼을 가두는 관습을 주려고 하며, 상대방에서 배우려 하기 보다는 상대방을 자신처럼 만드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아이를 키울 때 뿐만 아니라 나아닌 사람과의 모든 관계에서 특히 나보다 경험이 적다고 생각하는 사람과의 관계에서 늘 범하는 우인 듯 합니다.
소통과 관용
May 19th
소통…
요즘 ‘소통’이라는 단어가 정치권에서 가장 많이 언급되는 단어 중에 하나인 것 같습니다. 덕분에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의 소통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이야기 되고 있습니다.
‘커뮤니케이션 스킬, 소통, 대화’ 모두 같은 의미라고 생각합니다. 중요한건 이 모두 ‘프리젠테이션 스킬’, ‘말 잘하기’ 등과는 전혀 다른 의미라는 것이죠. 소통은 어느 한방향이 아닌 양방향이라는 점입니다. 물론 자신의 의견과 주장을 설득력 있게 논리적으로 듣는 사람의 오해 없이 잘 이야기 하는 것도 중요한 능력입니다. 다만 그건 ‘프리젠테이션 스킬’, ‘말 잘하기’ 라고 는 표현 할 수 있을 뿐, ‘커뮤니케이션 스킬’이 뛰어나도 ‘소통’을 잘 한다 라고 이야기는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소통에 가장 중요한 덕목은 관용이라고 생각합니다. 말 하고 싶은 마음을 꾹참고 듣고 있기만 한다고 소통이 잘 되는 것도 아니고, 자신의 의견을 상대방의 기분을 상하지 않게 이야기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이 소통을 잘 한다는 보장을 해 주는 것은 아닐 것 입니다.
소통과 관용
소통에 가장 중요한 부분은 ‘상대방의 의견이 나와 다를 수 있음을 인정하고, 나의 의견이나 신념이 이 세상에 존재하는 단하나의 선은 아님을 인정하는 마음’ 관용(寬容)의 자세가 가장 중요한 요건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도 일상 생활에서 업무를 하면서 또, 가정에서 가족들과 대화를 하면서 어떤 경우에는 논쟁이 발전적이다는 생각이 들 경우도 있지만 어떤 경우에는 한시간이고 두시간이고 이야기를 하고 또 해도 힘만 빠질 뿐 내가 왜 이야기를 했나 싶은 생각이 들 때가 있을 것입니다. 대화를 하자고 해서 대화를 했는데 결과는 전혀 딴 판이나 참 이상한 일입니다.
이 두 상황의 차이는 대화와 논쟁에 임하는 사람들이 ‘관용’의 자세를 가지고 임하였는지 그렇지 않았는지 차이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서로가 상대방의 의견과 신념을 인정하지 않는데 어떤 대화와 소통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이는 쌍방 모두가 관용적이어야지 한쪽에만 관용을 요구해서도 안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서로 다름에 대한 인정 없이는 대화도 없고, 소통도 없고, 어떤 커뮤니케이션도 없다고 이야기 하고 싶습니다.
관용의 힘
관용은 소통을 도와 줄 뿐만 아니라 본인의 발전에도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사람이 발전을 한다는 것은 나의 의견과 생각 중 잘못된 부분은 바로 잡고 다양한 각도의 사고를 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할 것인데 상대방을 인정하지 않는 경우에는 자신의 잘못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지금 현재의 자기 수준 딱 그 수준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대학입학시험을 한번 실패하고 재수를 하던 시절 재수생들이 다니는 입시학원 사회과 선생님께 저는 관용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처음 듣게 되었습니다. 그 후 제가 살아가면서 꼭 한번씩 저를 반성할 때마다 화두가 되는 단어 중의 하나 입니다. 그러고 보면 말도안되는 대학 입시 중심의 교육에서 전 큰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또 하나의 단어는 소심(素心)입니다. ‘학문의 즐거움‘ 이라는 책에서 배운 단어입니다. 기회가 되면 소심에 대한 저의 생각도 한번 정리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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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 관용에 대한 정확한 정의를 해 놓은 곳을 몇군데 찾아봤는데… 너무 길게 설명을 해 놨거나, 좀 다르게 설명 된 곳들이 있는 것 같아서 제가 이야기 하는 관용의 의미를 아래 덧붙입니다.
tolerance
The capacity for or the practice of recognizing and respecting the beliefs or practices of others.
(다른 사람들의 신념이나 행동을 이해하고 존중 하는 능력이나 실천)
사람을 믿는다는 것
Mar 25th
어제 드라마 이산을 보다가 ‘이산이 홍국영을 너무 믿는거 아니야’라는 생각이 들었다. 드라마를 보며 그런 생각을 하는 분들이 많았을 것 같다. 요즘 드라마에서 홍국영은 너무 근시안 적이지 않던가? 뭐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일을 하는 것 같기도 하고… 그렇다면 사람을 믿는 다는 것이 무엇인가? 누군가가 잘한다고 믿고, 좀 잘못한다고 믿지 못하면 그게 믿음인가? 이런 질문을 다시 던져보면 이산이 보여준 홍국영에 대한 믿음이 사람을 믿는다고 했을 때는 그쯤은 되어야 한다고 생각이 들 것이다.
삼국지에서 많은 장수들이 단 5%의 생존 확률도 없어 보이는 적진으로 과감하게 뛰어드는 이유는 무었일까를 생각해 본적이 있다. ‘영웅이 되기 위해서’, ‘남들은 5% 미만의 생존 확률이라고 생각하지만, 나는 잘나서 50%는 살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아니면, ‘돈 많이 벌기 위해서?’
사실 많은 장수들이 정말 목숨을 걸고 불가능에 도전을 하는 이유는 주군에 대한 상호 신뢰 때문이었다고 생각한다. 첫번째는 나를 의심없이 믿어준 주군에 대한 보답이고, 두번째는 주군이 옳은 길을 가고 있다는 나의 주군에 대한 믿음 때문일 것이다. 그러한 믿음이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드는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반대로 부하장수를 믿지 못하는 주군들은 결국 부하 장수의 배신에 파국을 보는 경우가 많았던 것 같다. 사실 부하장수 입장에서도 날 믿어 주지 못하는 주군에 목숨을 바칠 이유는 없지 않는가?
이산은 주군으로써 홍국영을 신뢰 했던 것이고, 사실 홍국영은 본인의 목숨을 걸고 자신을 믿어주는 주군을 위해서 최선을 다했고, 그런 홍국영이 없었다면 이산은 왕위에 오르지 못했을 확률이 높아보인다.
역사는 승자의 역사이기 때문에 결국 노론 벽파에 의해서 쫓겨나 죽음을 맞이하게 된 홍국영이 역사서에 좋게 기록될리는 없는 것이 당연한 일일 것이다. 사실이 어떻든 홍국영은 이산과 끝까지 함께 하지 못하였다는 점에서 그 본분을 다하지 못하였다는 점은 분명한 것 같다.
누구든 혼자 일을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주변에 뜻을 같이해주는 사람이 있어야 할 것이고, 때로는 나를 대신해서 돌격을 하고, 때로는 내가 그를 대신해서 방패막이가 되어주기도 해야 할 것이다. 이 과정에 서로가 의심을 하게 된다면, 저놈이 나대신 일을 잘 할까? 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면, 또 반대로 저 사람이 바른 방향으로 가는거야? 라는 의심을 하게 된다면, 그 후의 일은 보지 않아도 뻔한 스토리 아니겠는가? (물론 한 개인이 원체 뛰어나서 혼자 모든 것을 다 해결 할 수 있다면야, 남을 믿고 할 일이 뭐가 있겠느냐만.. )
재미로 손금을 봐주었던 어떤 분이 나는 사람을 너무 쉽게 믿어서 문제라는데 ㅋㅋ 믿음이 없으면 답이 없다가 내 지론 이다.
나는 무엇으로 일하는가?
Dec 2nd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정말 기쁘고 행복하다는 느낌을 모두들 느껴 보았을 것입니다.
저는 진짜 기쁘다는 느낌을 몇번 느껴 보았습니다.
[1]
고등학교 때 정말 생각지도 못한 좋은 성적의 성적표를 받아 보았을 때, 재수를 하고 대학 합격 통지를 받았을 때, 난생 처음으로 장학금이라는 걸 받았을 때 (물론 딱 한번 이었습니다만) 무지 기쁜 순간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아쉽게도 그 순간 저와 기쁨을 같이 나누어 줄 사람이 가족 밖에는 없었습니다. 저희 어머니, 아버지, 동생 정도가 정말 같이 기뻐해 줬던 것 같습니다. 동생과 부모님의 기뻐하는 모습과 걷다가도 혼자 히죽히죽 웃는 것이 전부였던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무지 기쁜 날이었지만, 기쁨의 표현이 제한적인 순간들인 것 같습니다.
[2]
저는 이 때만 무지 기뻐서 방방 뛰었던 것은 아닙니다.
되돌아 보면 이때 못지 않게 기뻤던 때가 있습니다. 중학교 2학년 때 전교 합창대회에서 우리반이 우승을 했을 때, 고등학교 때 제가 속해 있던 중창단이 무사히 학교 축제 공연을 마쳤을 때, LG 21세기 선발대에 선발 공고에 우리 팀의 이름이 올라가 있는 것을 보았을 때, 그리고, 직장 생활 2년차 시절 개발자와 디자이너와 며칠 밤을 회사에서 박스깔고 자면서 만들었던 사이트가 오픈 하고 얼마 안가 폭발적인 반응을 보였을 때… 이 때도 정말 미치도록 기뼜습니다.
그리고 이 때는 그 기쁨이 혼자가 아니어서 더욱 신이났습니다. 중학교 때는 담임선생님과 우리반 친구들이 모두 같이 방방 뛰면서 햄버거를 먹으로 갔으며, 고등학교 때 그날은 우리 중창단 친구들이랑 눈물나게 즐거운 시간을 보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리고 대학교 이후로는 거나한 술파티가 있었습니다. 그날은 모두가 웃음이 그치지 않았으며, 아픈지도 피곤한지도 몰랐습니다.
[3]
그리고, 사실, 일을 하다가 정말 안풀릴 것만 같은 문제를 번뜩 떠오른 아이디어로 문제가 해결되어 머리가 가벼워 졌을 때도 저는 무척 기분이 좋습니다. 어떨 때는 살짝 흥분되서 혼자 사무실 옥상에 올라가서 몇바퀴 돌고 내려온 적도 있습니다. 물론 이건 함부로 좋아하는 티를 내서는 안되는 때이기도 합니다. 가족들마저도 이야기 하기도 뭐하고 누구한테 자랑 하기도 순간들이죠.
세가지 상황 모두 정말 멋진 기쁨을 저에게 선물해 주었습니다. 살만난다는 표현이 딱 맞는 순간들이었지요. 제가 무언가 열심히 하는 이유가 있다면 이 세가지 부류의 멋진 경험을 다시 해보기 위해서 일 것입니다. [1]개인적인 성공, [2]팀이 하나의 팀이 되어 이루어낸 성공, 그리고 [3]내가 뭔가를 알아냈다는 즐거움, 이 세가지가 제가 열정을 가지고 열심히 움직이게 하는 그 ‘무엇’일 것입니다.
이 세가지 유형의 기쁨의 순간은 그 강도와 중독성이 조금은 다른 것 같습니다. 물론 저 개인적인 취향일 수도 있겠지만, 이 세가지 유형의 기쁨의 강도와 중독성을 설명해 보자면,
[1] 개인적인 성공을 거두었을 때는 정말 기쁘지만 같이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제한적이라는 점에서, 여러분들은 어떻게 느끼셨는지 모르겠지만 지나고 나서 뭔가 아쉬움이 꼭 남습니다. 하지만, 나에게 주어지는 보상이 너무 명확하고 분명한 즐거움입니다. 아쉬움이 남아도 그 보상으로 충분히 커버 될 수 있습니다.
[2] 사실 팀으로 거두는 성과에 대한 기쁨은 그야말로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은 상상할 수 없습니다. 강도는 정말 무지 세며, 그 여운이 오래 갑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멋진건 기쁨을 마음 것 같이 나눈 다는 것입니다. 또한, 제 짧은 경험에 의하면 [1]개인적인 성공에도 무척 많은 도움을 주는 1석 2조의 시츄에이션이죠. 정말 멋집니다. 그런데 문제는 [1]개인적인 성공 보다는 일단 단기적으로는 명확하고 분명한 보상이 없는 경우가 있습니다. 회사에서는 더욱 그럴 때가 많아 보입니다. 그러다 보니 여기에 중독되어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3] 알아내는 즐거움. 이건 정말 개인 성향에 따라 많이 다른 것 같습니다. 전 꽤나 이걸 즐기는데 다른 분들은 어떨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회사에서는 뭔가 알아낸걸 기뻐하다가, 혹은 기뻐하는 눈치를 보였다가는 아주 사방에서 태클이 들어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기쁨은 속으로 느끼되 모른척하는, 그 공을 주변으로 돌리는 센스가 필요한 기쁨의 유형인 것 같습니다. 이런 점 때문에 [3]번 유형의 기쁨을 즐기는 사람들은 회사원이 아닌 사업을 하거나, 학자가 되야 되는 것 같습니다.
전 개인적으로 솔찍히 세가지 유형의 기쁨의 선후를 가리기 힘든 것 같습니다. 다만, 얼마전 본 ‘미라클’이나 ‘제리맥과이어’를 보면서 그들이 한없이 부러웠던 것을 보면 [2]팀이 하나되어 만들어내는 성공을 다시한번 꼭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요즘은 무척 간절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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