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믿는다는 것
March 25, 2008 – 8:52 am / 486 views어제 드라마 이산을 보다가 ‘이산이 홍국영을 너무 믿는거 아니야’라는 생각이 들었다. 드라마를 보며 그런 생각을 하는 분들이 많았을 것 같다. 요즘 드라마에서 홍국영은 너무 근시안 적이지 않던가? 뭐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일을 하는 것 같기도 하고… 그렇다면 사람을 믿는 다는 것이 무엇인가? 누군가가 잘한다고 믿고, 좀 잘못한다고 믿지 못하면 그게 믿음인가? 이런 질문을 다시 던져보면 이산이 보여준 홍국영에 대한 믿음이 사람을 믿는다고 했을 때는 그쯤은 되어야 한다고 생각이 들 것이다.
삼국지에서 많은 장수들이 단 5%의 생존 확률도 없어 보이는 적진으로 과감하게 뛰어드는 이유는 무었일까를 생각해 본적이 있다. ‘영웅이 되기 위해서’, ‘남들은 5% 미만의 생존 확률이라고 생각하지만, 나는 잘나서 50%는 살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아니면, ‘돈 많이 벌기 위해서?’
사실 많은 장수들이 정말 목숨을 걸고 불가능에 도전을 하는 이유는 주군에 대한 상호 신뢰 때문이었다고 생각한다. 첫번째는 나를 의심없이 믿어준 주군에 대한 보답이고, 두번째는 주군이 옳은 길을 가고 있다는 나의 주군에 대한 믿음 때문일 것이다. 그러한 믿음이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드는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반대로 부하장수를 믿지 못하는 주군들은 결국 부하 장수의 배신에 파국을 보는 경우가 많았던 것 같다. 사실 부하장수 입장에서도 날 믿어 주지 못하는 주군에 목숨을 바칠 이유는 없지 않는가?
이산은 주군으로써 홍국영을 신뢰 했던 것이고, 사실 홍국영은 본인의 목숨을 걸고 자신을 믿어주는 주군을 위해서 최선을 다했고, 그런 홍국영이 없었다면 이산은 왕위에 오르지 못했을 확률이 높아보인다.
역사는 승자의 역사이기 때문에 결국 노론 벽파에 의해서 쫓겨나 죽음을 맞이하게 된 홍국영이 역사서에 좋게 기록될리는 없는 것이 당연한 일일 것이다. 사실이 어떻든 홍국영은 이산과 끝까지 함께 하지 못하였다는 점에서 그 본분을 다하지 못하였다는 점은 분명한 것 같다.
누구든 혼자 일을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주변에 뜻을 같이해주는 사람이 있어야 할 것이고, 때로는 나를 대신해서 돌격을 하고, 때로는 내가 그를 대신해서 방패막이가 되어주기도 해야 할 것이다. 이 과정에 서로가 의심을 하게 된다면, 저놈이 나대신 일을 잘 할까? 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면, 또 반대로 저 사람이 바른 방향으로 가는거야? 라는 의심을 하게 된다면, 그 후의 일은 보지 않아도 뻔한 스토리 아니겠는가? (물론 한 개인이 원체 뛰어나서 혼자 모든 것을 다 해결 할 수 있다면야, 남을 믿고 할 일이 뭐가 있겠느냐만.. )
재미로 손금을 봐주었던 어떤 분이 나는 사람을 너무 쉽게 믿어서 문제라는데 ㅋㅋ 믿음이 없으면 답이 없다가 내 지론 이다.
이 저작물은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코리아 저작자표시-비영리-변경금지 2.0 대한민국 라이센스에 따라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2 Responses to “사람을 믿는다는 것”
믿음과 신뢰 참 중요한 단어인것 같네요. 문득 넘버쓰리의 한석규의 대사가 생각이 나네요. 난 51%믿는다는 51%를 믿는다는 것은 전부를 믿는다는 말… 나만큼 믿고 서로 의지할 수 있는 벗 3명만 세상에 남길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적이 있었네요. 갑자기 글을 읽고 나니 이런 저런 생각이 많이 드네요. 글 잘읽었습니다.(^^)
By 비트손 on Mar 25, 2008
여러면에서 생각하게 하는 주제네요.
그간 제가 겪은 바에 의하면 ‘상호 신뢰’라는 것은 형성되기 어려울 뿐더러 깨지기도 쉽더군요.
관련해서 제가 궁금한 것은… 사람의 관계라는 것이 어떤 상황이나 배경에서 만들어지는 경우가 다반사인데 상황이나 배경이 변경되어도 계속 유지될 수 있는 근본적인 관계라는 것이 어느정도까지 가능한가 입니다. 미수다에서 한국사람들은 사회적 레벨에 맞춰서 교우하려고 한다는 이야기가 나온 적이 있어요. 한국사회에서 믿음이라는 것은 한계가 있는 건 아닐까요?
By 무딘 on Mar 25, 2008